sbs 스페셜 용현 씨돌 요한 근황 남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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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에서 자연인 김씨돌 씨의 삶을 방송했어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1부로 꾸며져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에 살았던 자연인 김씨돌 씨의 삶을 공개했어요. 

sbs 스페셜 용현 씨돌 요한

김용현 씨는 현재 병원에 있습니다.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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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홀로 일하던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등산객에 의해 구조되었고 본인이 갖고 있던 스트레스가 악화되며 뇌출혈로 쓰러지게 된 겁니다.  

김용현 씨의 치료를 맡고 있는 손병철 신경외과 전문의는 “뇌 중심부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혈압이 좀 높았다. 뇌출혈이 생겨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김용현 선생님의 뇌는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렵다. 오른쪽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왼쪽의 재활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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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른팔과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그는 자신의 생각도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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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데이비스가 1987년 6월에 촬영한 사진 속에서 어디에나 있었을 그의 모습을 찾아냈어요.  그는 세례명 요한, 자연인 씨돌로 불렸던 용현이었어요. 

1987년 겨울 경북 포항의 임분이 할머니는 아들 정연관의 사망 소식은 의문 투성이의 죽음이었고 그들 앞에 나타난 요한이 정연관 상병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었어요. 

요한이자 용현이었던 그는 정연관 상병의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어요. 

용현은 1995년 최악의 참사였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함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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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취재를 크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활약했던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빠졌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섰다” 용현은 구조를 마치고 봉화치 마을로 다시 돌아왔어요. 

용현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왼손으로 글을 써 표현했어요. 

그는 7년 전 봉화치 마을에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갔고 원고를 보관한 곳은 작은 출판사였어요.  

“그분의 원고는 한 마디로 산중일기이다. 그런데 필체를 읽어내기가 어려워 처음에는 책을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항상 작은 것을 나누는 그 마음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책으로 만들고 있다”

용현이 쓴 책은 무려 2천 페이지로 용현의 글은 봉화치에서 겪은 30년을 시간을 그대로 담았어요. 

1982년 김승훈 신부는 서울의 작은 성당의 신부로 부임을 하며 용현과 관계를 맺었어요. 

용현이라는 본명을 숨기며 세례명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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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의 현장, 그곳에는 늘 용현이 있었고 용현은 자식을 죽음으로 몬 군사정권에 대한 합당한 죄를 묻는 현장도 있었어요. 그 날 용현은 백골단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김승훈 신부는 고문 피해를 입은 용현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주었어요. 

신현봉 신부는 “요한이 수배령이 내려졌다. 김승훈 신부를 찾아갔는데 자기도 수배령이 내려서 나한테 가보라고 했단다. 그렇게 날 찾아왔다” 용현과 3년을 함께 생활했고 “처음에는 용현을 부탁에 의해서 돌봐줬지만 하는 행동을 보고 그렇게 없는 이들을 위해 도와주고 진실하게 누군가를 도우려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

그는 신현봉 신부가 부임지를 옮기게 되며 봉화치로 거처를 옮기고 자연인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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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던 용현은 지극한 심한 고통을 이기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폭력과 고문의 후유증을 가진 용현에게 봉화치와의 만남은 큰 선물이었고 자연인 씨돌이 되었습니다. 

자연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에 그는 매일 한 시간씩 산불 감시를 했고 지난 30년간 봉화치는 단 한 차례도 산불 피해가 없었어요. 

용현은 정선에서 일어난 토종벌 폐사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어요. 

자연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오랜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었어요. 

재야 운동가 장기표 선생은 “용현 씨는 자기가 그리는 이상 사회를 실천하고 실현했던 사람이다. 이게 진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옥희 할머니는 용현의 현재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옥희 할머니는 “한 이웃에 있을 때 친척 같고 자식같이 지냈었다. 너무 안 됐다”

sbs 스페셜 용현 씨돌 요한 근황 남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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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관 상병의 가족들을 만나 용현 씨가 남긴 글을 전했고 정 상병의 형은 “요한이는 아직까지 연관이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지는 않았네. 난 잊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보니 잊고 있지 않았네”

“정말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 진상규명 후에 연락이 안 되는 건 우리가 제대로 보상해준 게 없어 섭섭한 마음에 연락을 끊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정말 놀라고 있다”

임분이 할머니는 “내가 손에 가진 게 없어서 요한한테 보답을 못해줬다. 그래서 섭섭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용현씨 요양원 근황

임분이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용현을 만나기 위해 이동했어요. 

“사람 사는 게 참 희한하다. 요한이 만날 때 슬픈 마음으로 만났는데 이제는 웃어지려나 모르겠다. 고마운 게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제대로 표현을 못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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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임분이 할머니와 아들을 만난 요한은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어요. 

임분이 할머니와 아들은 요한에게 미안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어요. 

요한은 정 상병의 사진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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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임분이 할머니 가족이 자신의 가족 같아서 그렇게 도왔다고 하며 웃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어요. 

이큰별 PD는 “요한, 씨돌, 용현으로 사는 동안 많은 일들을 했다. 그런 일들이 정작 본인에게 도움되거나 관계되는 일이 없었다. 왜 그런 삶을 살았나?”

용현은 크게 웃더니 망설임 없이 왼손으로 답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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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그렉의 아내 마사코는 용현에 대한 사연을 듣고 크게 감동했어요.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 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따라가면 다양한 삶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