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배경 원인 전개과정

동학농민운동

1894년 동학 지도자들과 교도, 농민이 일어난 백성의 무장 봉기입니다. 

1894년 1월 고부 봉기와 음력 4월 전주성 봉기와 음력 9월 전주, 광주 괄기가 있습니다. 

교주 최제우의 신원 외에 조선 양반 관리들의 탐학, 부패, 사회 혼란에 불만이 있다가 1882년 전라도 고부군에 부임한 조병갑의 비리와 남형이 불을 붙였습니다. 

1882년 구식 군대 폐지와 관련해 5군영 소속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키고 1884년 개화파의 갑신정변이 일어 납니다. 

임오군란에 흥선대원군이 반란세력을 업고 궁중에 들어와 대권을 장악하고 청군에 의해 납치되고 갑신정변에 궁중을 습격한 개화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청나라군에 의해 밀려남으로 왕권이 실추됩니다. 

전봉준은 명성왕후와 민씨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대원군과 손을 잡아요. 

흥선대원군과 결탁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개남은 충돌하다가 독자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방언은 농민운동 진압 후 흥선대원군이 특별 사면을 해 석방되지만 민씨 세력에 의해 살해됩니다. 

개화파 지도자 망명정객 윤치호는 동학 농민운동을 적극 지지했어요. 

처음에는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등 승승장구합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민시 정권은 청나라군과 일본군을 번갈아 끌어들이고 농민 운동 진압 후 청일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조선의 자주권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민씨 정권은 청나라군을 끌여들여 개화파를 진압하고 일본은 일본대로 청나라가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한다는 이유로 조선에 병력을 파견합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군대를 보내 도성을 점령하고 고종을 위협해 개화 정책을 시행하자 전봉준은 척왜근왕을 외치며 농민군을 모았고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북진합니다. 

공주 우금치에서 기관총 근대무기와 조직력으로 일본군과 조선 관군에게 대패하고 계속 패전을 당해 순창으로 퇴각합니다. 

전국 곳곳에 반봉건, 반외세 민란이 이어지고 1894년 3월 동학혁명으로 폭발되고 관군과 농민에서 발전했습니다. 

Leave a Comment